Recorder & Life Story

[공연리뷰] 2010 크누아 리코더 앙상블 정기연주회 본문

리뷰/공연 & 전시

[공연리뷰] 2010 크누아 리코더 앙상블 정기연주회

브뤼헨 (황금빛모서리) 2010. 12. 15. 11:28




리코더 앙상블 연주에 있어서 유독 신뢰를 주는 팀이 있다. 학생의 신분이기는 하지만,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리코더를 전공하는 학생들로 구성된 크누아 리코더 앙상블이 그런 경우다. 물론, 입학하고 졸업하는 학생들에 따라 멤버 구성은 달라지지만, 이들의 탄탄한 팀웍은 어느 앙상블 못지 않다. 특히 해마다 공연에서 느끼는 것은 다른 팀들이 소홀하게 다루곤 하는 기본적인 부분들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새삼 이 팀이야말로 진정한 프로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2010년 12월 14일, 어제 크누아홀에서 열린 정기연주회에서도 이들은 변함없는 실력을 보여주었다. 단지 아쉬웠던 점이라면 공연장 운영측의 성의없는 태도 정도라고나 할까. 무엇보다도 어제 공연장의 상태는 악기와 연주자들에게는 정말이지 최악의 상황이었다. 관객들에게는 춥지 않을 정도의 기온이었지만, 연주자들과 리코더에게는 다소 차가운 상태였기에 연주자들은 연주하면서 발생하는 습기로 인해 연주에만 몰두하기는 어려웠으리라 본다. 특히 3중주나 듀엣 등의 소규모 앙상블에서의 투명함을 요하는 부분에서 유독 드러나는 이런 막힘현상은 안타까움을 유발케했다. 학교측의 좀더 세심한 배려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물론, 요청하지 않고 연주회를 기획했다면 준비한 사람에게 책임이 따르겠지만..

이번 연주회는 다소 적은 분량과 소규모 앙상블로 구성된 연주회였다. 예전에는 재학생들과 더불어 졸업생들도 같이 하는 기회가 있어서 10명 안팎의 규모로 앙상블을 구성할 수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학년 중에 비는 인원들이 있는 바람에 전체 재학생도 여섯 명 밖에는 되지 않았고, 때문에 큰 욕심은 내기 어려웠던 것 같다. 전체적인 프로그램은 여느 때처럼 르네상스부터 현대까지로 이어졌고, 크반츠, 비발디, 텔레만 등의 바로크 작품이 주를 이뤘다. 첫 곡 샤인의 콘소트 음악은 훌륭했다. 르네상스 스타일의 악기로 연주한 5중주의 이 작품은 당시 콘소트 악기로서의 리코더의 위상을 되살려주는 것 같았다. 악기의 특성상 컨트롤하기 어려운 음정도 이들은 정교하게 맞춰나갔고, 각 악장의 특성에 맞게 전개시킨 부분도 뛰어났다. 하지만, 다소 평이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은 남는 연주였다. 르네상스 시대의 생동감이 좀더 표현되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음악을 접근하는 시선 자체가 당시의 음악을 너무 진중하게 본 것은 아니었나 싶기도 하면서 좀 더 다양한 아이디어를 부여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크반츠의 세 대의 알토 리코더를 위한 소나타는 바로크 시대의 바소 콘티누오가 없는 선율악기만으로 구성된 작품의 실제적인 예다. 보통 이런 형식은 두 대의 알토 리코더를 위한 듀엣이 많지만, 부와모띠에르나 크반츠, 마테존 등의 작곡가들이 세 대의 알토 리코더를 위한 작품들을 종종 남겼다. 베이스가 없는 공백을 세 대의 알토 리코더는 오밀조밀하게 상승과 하강, 순차적으로 등장하는 대위법적인 전개를 통해 말끔하게 메꾸었고, 알토 리코더 특유의 생기 발랄함을 과시했다. 하지만, 두 번째 악장부터 시작된 습기와의 싸움은 연주자들에게는 고역이었을 것 같다. 그럼에도 순탄하게 연주를 마친 모습은 훌륭했다. 전반부의 마지막 곡인 폴 린하우츠의 작품은 이젠 워낙 유명해진 작품이다. 암스테르담 루키 스타더스트 쿼텟(ALSQ)이 브뤼헤 콩쿠르에서 우승하게 만든 곡으로 원곡은 스티비 원더의 작품이다. 이 개성 넘치는 작품을 연주한 ALSQ의 음원은 이 곡을 연주하려는 국내 연주가들에게 교과서와도 같았는데, 덕분에 우리는 늘 그렇고 그런 답습하는 연주만을 주로 접하곤 했다. 과연 이들은 이 곡을 어떻게 풀어 나갈까? 시작부터 약간은 다른 스타일의 효과음으로 시작하면서 중간중간 템포변화와 화성변화, 갑작스런 효과음들을 사용한 연주는 정말 젊은 연주자들의 풍부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연주였다. 이런 시도는 곡 안의 흐름은 유지하면서 유머러스함을 강조하면서 듣는 이들을 유쾌하게 했다.

후반부의 첫 곡인 비발디의 콘체르토 RV 565는 ALSQ의 버전을 채택하면서 곡의 빠르기는 플란더스 리코더 쿼텟의 스타일을 적용했다. 빠르게 시작된 두 대의 소프라노 리코더는 일사불란하게 경쟁구도를 잡아 나갔고, 저음부의 안정적인 지원도 훌륭했다. 하지만, 다시금 엄습해오는 습기와의 싸움, 그리고 두 번째 악장 정도부터 였을까. 연주자들의 집중력이 시작할 때와는 달리 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때문에 시작했을 때의 분위기와는 달리 마지막 악장을 마쳤을 때는 뭔가 모를 아쉬움이 남았다. 텔레만의 두 대의 리코더를 위한 소나타는 어린 학생 둘의 연주로 시작되었다. 음악 내에 젊은, 약간은 들뜬 분위기가 감돌았고, 듣는 내내 서로 교감하는 연주자들의 눈빛이 곡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습기와의 싸움은 이들에게도 닥쳐왔고, 듣는 내내 학교가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마지막 도펠바우어의 현대곡은 전체 여섯 명이 한 무대에 선 유일한 연주였다. 현대곡임에도 어렵지 않은 서사적인 느낌이 가득한 작품에서 리코더는 타악적인 효과와 더불어 다양한 리듬을 표현했다. 특히, 곳곳에 배치된 졸업생들의 원숙한 연주는 다른 학생들이 편안하게 기댈 수 있는 버팀목과도 같은 존재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번 크누아 리코더 앙상블의 공연은 훌륭했지만, 왠지 급조된 것 같은 느낌은 공연장을 나오면서 내내 지울 수가 없었다. 여섯 명 밖에는 안 되는 규모였다 해도 프로그램 구성도 다소 빈약해 보였고, 짜임새 면에서도 부족해보였다. 그래도 여전히 국내 리코더 앙상블을 대표하는 이들의 실력은 탁월했다. 좀 더 발전적인 모습을 다음 해에는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