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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다소 서툴긴 해도 메세지가 있는 '마당을 나온 암탉'

브뤼헨 (황금빛모서리) 2011. 7. 14. 11:02



위드블로그를 통해 좋은 기회에 시사회를 다녀왔다. 감상한 영화는 한국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 마침 시사회 날짜가 아들래미의 다섯 번째 생일날이었다. 아이와는 아직 한번도 극장에서 영화를 본 적이 없었기에 이번에 기회가 된다면 정말 좋은 추억이 되겠구나 싶어서 신청했고, 선정됐다. 무엇보다 오늘날 가족들과 함께 볼 만한 영화가 드문 상황에서 함께 볼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되었기에 무척 기대가 되었다. 미리 프리뷰로 맛본 동영상은 무척 신선했다. 전체적으로 초록색이 많이 가미된 것 같은 영상은 한국의 풍경을 스크린에 고스란이 담아냈던 것 같다. 만약 극장에서 이 애니메이션을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7월 11일, 피카디리 극장에 여유있게 도착했다. 매표소에는 위드블로그 뿐만 아니라 다음 카페와 몇몇 군데를 통해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순간..'아! 오늘 영화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자리는 복잡했다. 각각의 테이블에서 표를 나누어 주던 담당자들은 무척이나 애를 먹는 것 같았고, 표를 찾는 사람들중 일부는 잔뜩 신경질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질서? 거기엔 질서를 지키다가는 바보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무질서가 난무했다. 애니메이션의 성격상 아이들과 온 엄마들이 많았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건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았다. 각 테이블의 담당자들을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으니까....복잡한 장소에서 마침 줄도 잘못 섰는데, 그 쪽 담당자가 위드블로그는 저 옆쪽이라고 친절하게 안내해줬고, 덕분에 쉽게 표를 받을 수 있었다. 이제 이 인파 속에서 우리 식구는 미아가 되지 않기 위해 손에 손을 잡고 무리를 헤쳐 나갔다. ^^

8관에 들어섰더니 예상과는 달리 어른 관객들이 많았다. 우리는 제일 뒷열 왼쪽 구석에 앉았다. 원래는 아내와 내가 한 자리씩 앉고 아이는 무릎에 앉혀서 볼 생각이었는데, 우리가 앉은 자리는 세 자리가 붙어있는 곳이었다. 덕분에 편하게 감상할 수 있어서 세심한 배려에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예고편을 끝으로 극장은 어두워지고, 영화가 시작된다.

이야기의 시작은 양계장에서 구속되어 있는 암탉 '잎싹'의 자유로의 갈망으로부터 시작된다. 마치 영화 '쇼생크탈출'을 떠올릴 만큼 치밀한 작전하에 자유를 얻은 잎싹은 족제비의 등장에 생명의 위협을 느꼈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청둥오리 '나그네'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긴다. 이렇게 시작된 나그네와의 인연, 그리고 수달인 '달수씨'와의 만남으로 그의 긴 여정은 시작된다. 나그네와 그의 부인의 모습을 부럽게 바라보던 잎싹은 어느 날 족제비에게 연인을 잃은 나그네의 알을 품게 된다. 나그네 마저 족제비와의 결투 속에 세상을 떠나고, 곧이어 알에서 깨어나는 청둥오리 새끼. 


 

알에서 갓 깨어난 청둥오리 새끼는 잎싹에게 '엄마!' 라고 외치고, 이 묘한 관계의 암탉과 새끼 청둥오리는 그 자리에서 모자관계가 된다. 그러나 혈통도 다르고, 습성도 다르고, 사는 거처 또한 다른 이 둘의 관계는 순탄치만은 않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자신과 엄마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어린 청둥오리 '초록'은 내면적인 방황을 겪게 되고, 곧이어 날아온 청둥오리 무리들을 발견하면서 그 무리를 동경하게 된다. 결국 떠나야 하지만, 마음이 무거운 초록과 보내야만 하기에 아픈 마음을 달래면서 보내는 엄마 잎싹의 이별이 가슴 아프다. 결국 이 작품의 결말은 비극이라고까지 말하긴 힘들겠지만, 아이들의 동화 치고는 상당히 가슴 아픈 이야기다. 우리가 어린시절 엄마 찾아 삼만리를 보고도 얼마나 눈물 지었던가.




잎싹이 마지막으로 사라지면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음악이 흘러 나온다. 다섯 살짜리 아들래미는 음악이 끝나면 나가자고 한다. 우리 가족은 뒷자리에서 마지막 장면이 나올 때까지 화면을 응시했다. 아내는 영화를 보고서 잎싹의 희생적인 삶에 관해 곱씹는다. 이처럼 잎싹의 삶은 자식 뿐 아니라 모두에게 남김 없이 주는 우리의 엄마들의 삶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캐릭터다. 게다가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입양' 이라는 메세지도 또한 던지는 존재이기도 하다. 아직도 수 많은 아이들이 부모없이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불가피하게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입양을 이 영화는 조용한 목소리로 권고하는 듯 하다.

영화를 본 후, 작품의 원작자의 인터뷰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황선미 작가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우연히 오리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인공 부화로 태어나 사람 손에 길들여진 오리는 자기 알을 안 품는다고 해요. 한편으로 토종닭은 알을 품어야 할 때가 되면 가슴에서 털이 빠진대요. 가슴팍의 맨살로 알에 온기를 주고 품기 위해서죠. 같은 가금류인데도 습성이 대비되는 걸 보면서, 잘 붙이면 이야기가 나오겠다 싶었죠. 여기서 자유의지를 떠올렸어요."

그러고 보니 잎싹이 알을 품을 때 가슴에 털이 빠진 모습이었던 것 같다. 약간은 허무맹랑 할 수도 있지만, 가능성 있는 소재로 살을 붙인 작가의 아이디어도 무척이나 기발하다. 게다가 같은 종의 알이 아닌 청둥오리의 알이라니!! 또한 잎싹의 목소리 연기를 맡은 배우 문소리는 당시에 임신했을 때였다고 한다. 그 만큼 엄마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었겠다 싶다. 하지만, 아쉬운 것들 중에서 목소리 연기도 해당된다.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는 무척 훌륭했다. 누구도 그들의 연기를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와 애니메이션의 캐릭터와의 성격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효과를 보여주진 못했던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지 못한 그래픽도 아쉬웠던 대목이다. 한국의 풍경을 멋지게 그렸던 배경들, 그리고 입체감있게 묘사했던 주인공들의 모습이 부분적으로 괴리감 있게 다가왔다. 아..저 대목에서 왜 그랬을까...하는 탄식어린 목소리가 속에서 종종 솟아나곤 했다. 이런 부분은 역시나 자본적인 한계인가. 명필름의 소신있는 발걸음에 다른 이들이 협력했다면 좀더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든다.  

음악은 무난했다. 이 무난했다는 말은 특별하게 뇌리에 박히는 음악은 없었다는 말이다. 영화를 보면 사용된 음악들에 상당히 신경을 쓰면서 보는 편인데, '마당을 나온 암탉' 의 음악은 그리 크게 기억에 남진 않는다. 아이유가 불렀다던 노래도 멜로디 조차 기억나지 않고... 개인적인 취향이랄수도 있지만, 아름다운 동화와 거기에 맞는 음악이 있었다면 그 감동은 더 배가 되지 않았을까? 이 때 떠오르는 사람은 바로 노영심!!  노영심의 음악들이 여기에 수록되었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누군가 이 영화에 관해 묻는다면 과감히 아이들과 함께 가서 보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날 상업적으로 물들어 있는 문화 속에서 우리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는 유익한 작품들이 얼마나 찾기 힘든가. 날로 기승을 부리는 개인주의 속에서 내 가족만이 아닌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마음을 우리 아이들게 주어야 할텐데 주변 매체들은 얼마나 자극적인 내용들로 가득한가. 숱하게 쏟아져 나오는 디즈니와 픽사의 애니메이션들은 사실상 어른들을 위한 눈요깃거리들이 아닌가. 교훈적인 내용들도 물론 담겨 있긴 하지만, 그 교훈을 둘러싼 배경은 우리 아이들에게 유해한 부분이 너무도 많다. 잎싹과 초록 모자를 다룬 이 애니메이션은 그런 유해환경 속에서 한번쯤 고민을 해볼 수 있는 '이야기' 가 작품 속에 담겨 있다. 다소 기술적인 면에서 매끄럽지 않은 부분은 있더라도 이 작품 안에는 '진심' 이 담겨 있다. 멋드러진 목소리를 가진 가수가 부르는 노래 속에서도 감동을 받지 못하다가도 서툴게 부른 아이의 순수한 노래에서 감동을 받는 이유가 바로 이 '진심' 이 담겨 있는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른 결과라고 본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또 다시 무질서를 경험하고, 개인주의를 경험한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서로를 밀치면서 내 가족만을 생각하는 모습들은 이 영화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나 싶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알을 깨고 나오면서 엄마라고 부르는 초록이와 잎싹의 모습이다. 순간 난 우리 아이가 태어났던 5년전이 무득 떠올랐다. 핏덩이로 태어나서 탯줄을 끊던 그 순간...그리고, 어느날 아빠라고 불렀을 때의 그 감동... 이 영화는 부모들에게도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아이를 낳아야 부모의 심정을 안다고 했던가. 초록이 방황하면서 잎싹에게 짜증내는 모습들 속에서 어린시절 내 모습을 발견했고, 당시의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심정을 짐작케 했다.  




'마당을 나온 암탉' 은 온 가족을 위한 작품이다. 아이들은 초록이의 입장에서, 어른들은 잎싹의 입장에서 그들의 삶을 진지하게 지켜볼 수 있다. 과연 오늘날에도 통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아낌없는 사랑도 등장하고, 자식된 도리도 가르친다. 그리고 마지막엔 수 많은 이들과 공존하는 삶 속에서 타인을 위한 희생 또한 보여주기도 한다. 여러가지 물음을 던지는 영화, 이들의 도전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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