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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일상

악기를 길들인다는 것은...

브뤼헨 (황금빛모서리) 2011. 10. 20. 14:57

최근 아는 분의 테너 리코더를 부탁받아 길들이고 있다.
매일마다 약 10~20 정도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데,
3~4일 정도 밖에 안 되었는데도 점차적으로 소리가 나아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고음, 특히 '높은 시' 까지 소리가 원활하게 났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그 음보다 높은 도까지도 점점 단단한 소리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 같다.
처음에 푸석했던 소리들이 점점 알맹이가 있는 소리로 바뀌면서 드는 생각은
무엇보다도 리코더가 기특하고 대견하다는 것이다.

목관 리코더의 경우 길을 들이는 것은
악기 스스로가 수분을 흡수하고, 뱉어내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다.
처음에 뻣뻣했던 조직들이 점점 융통성 있는 몸으로 바뀌면서
보다 더 능동적으로 호흡에 대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바싹 말라있는 악기 보다는 약간의 수분을 머금고 있는 리코더의 소리가 연주하기에도, 듣기에도 훨씬 좋다.
메마른 악기의 음색은 건조한 가을철에 로션을 바르지 않아 피부가 당기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반면 약간의 습기를 동반한 리코더는 촉촉하고 풍부한 감성을 전달해준다.

처음에 악기를 맡기신 분께는 최소 몇 개월에서 6개월까지로 말씀드렸는데,
잘 하면 2~3개월이면 상황은 종료될 것 같다.
처음에 걸리적 거리던 호흡이 이제 순조롭게 빠지는 걸 느끼면서
뭐랄까.. 마치 오래된 숙변이 제거되는 느낌마저 들었다.

오늘도 리코더를 불면서 짚어본 것은 '길들인다' 라는 말에 관해서다.
분명 길들인다는 말이 맞긴 한데, 그 과정 가운데 경험하게 되는 것은
리코더를 개인적인 종속물로 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애완견을 길들이듯이, 다시 말해 훈련시키듯이 리코더를 훈련시킨다고 볼 수 있을까?
그 보다는 같은 길을 걸어가는 동반자의 인상을 난 더 강하게 받는다.
앞서 소리가 개선되면서 기특하고, 대견하게 여겨졌던 것처럼
리코더를 길들이는 가운데 느끼는 감정은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심정과도 비슷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과연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길들이는가?

오히려 이런 과정은 '양육' 이라는 표현에 더 가까울 것 같다.
갓 태어난 아이를 하나 둘 가르치면서 키우듯이 우린 처음 만난 악기와 그렇게 대면하고,
점차 성장하는 아이를 대견하게 바라보듯이 날이 갈수록 변하는 리코더에게서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장성한 아이를 보면서 아이의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기를 바라듯이
이제 제법 좋은 소리를 내는 리코더를 통해 자유로운 연주로의 발걸음을 내딛는다.

길들인다는 말, 왠지 약간의 거부감 마저 드는 오늘이다.
더불어 모 선생님의 교본 제목이 문득 떠오른다.

'리코더는 내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