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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음악이야기...

브뤼헨 (황금빛모서리) 2012. 1. 17. 13:30


난 어린시절에 관해서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유독 어린시절, 초등학교 이전의 기억들은 사진들만 보면서 그랬나보다..하고 추측할 뿐.

지금은 몸이 불편하시지만, 젊은 시절 음악을 무척 좋아하셨던 아버지.
그 아버지는 전문적으로 음악을 공부하시진 않았지만, 이태리 가곡을 무척 좋아하셨다.
당시 교회에서 지휘도 하시곤 했고, 종종 지인들의 결혼식이나 여러 자리에서 축가도 불러줄 만큼
아마추어로서 괜찮은 실력을 갖고 계셨던 아버지.
그 아버지가 노래를 부르셨던 기억도 내겐 하나도 남아있지 않지만,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담긴 테이프를 통해 멋진 목소리다! 라는 걸 알았다.

그 테이프에 담긴 노래는 바로 카로미오벤..




그런 아버지와 달리 난 기악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두 살 위인 누나는 친구 어머니께서 운영하시는 피아노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웠는데,
나 또한 어린시절 10개월 가량 그 곳에서 피아노를 배웠다.
내 레슨비는 받지 않고, 무상으로 가르쳐주셨던 친절하신 원장님..
하지만, 당시 난 피아노 배우는걸 싫어했었다. 사실 피아노 배우기 싫었다기 보다는
노란 피아노가방을 들고 골목길을 지나는 것이 싫었던 것 같다.
뭐랄까...남자가 피아노를 배운다는 건 무척이나 창피한 것처럼 여겼던 그때...

초등학교때 가끔 어머니랑 장보러 종종 같이 가곤 했었는데,
어느 날 어머니께서 음악 테이프를 하나 사주시려고 레코드 가게에 데려가셨다.
당시 주변에는 레코드가게는 변변한게 없었고, 화장품 가게 안에서 한 켠에 진열을 해 놓은 정도에 불과했다.
거기서 내가 처음으로 골랐던 음반, 테이프는 바로 전면에 호른이 그려져 있는 행진곡 테이프였다.
지금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그 테이프.. 그걸 고르게 된건 다름아닌 '콰이강의 다리'가 수록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디선가 들었던 그 휘파람 소리에 매료되어 있던 당시 그 음악은 무척이나 기분좋은 무언가였다.




고등학교 시절.... 무척이나 쑥기 없고, 내성적이었던 나였지만,
1학년 시절 동아리 홍보차 우리 반에 들어온 '리코더반' 선배들의 소개는 왠지 모르게 내 가슴에 방망이질을 해댔다.
가입을 원하는 학생들은 점심시간 음악실 앞으로 오라고 했었고, 소심했던 나는 그 시간에 음악실 주변을 배회하곤 했다.
그러다 용기를 내서 가입... 당시 리코더라는 악기는 크게 부담없이 음악을 할 수 있는 존재였다.
학교 내부적인 문제로 학교에서는 2학년에 접어들 무렵 리코더반을 해체시켰다.
당시 친구들과 나는 어떻게든 살려 보려고, 이 선생님, 저 선생님 쫓아다니며 담당교사를 부탁했고,
심지어 교장실에 쳐들어가서 교장선생님과 담판(?)을 벌이기도 했다.
소심했던 나에게 그때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났었는지... 교장선생님 앞에서 이 동아라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그 앞에서 리코더를 꺼내 불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만 나올 뿐이다. 
그때 쫓아내지 않고 경청해준 교장선생님... 성함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감사하다.

1996년 1월 군에 입대했다.
특이하게도 전방에서 훈련 받았는데, '경비교도대' 라는 법무부 소속으로 차출되었다.
그때 대구교도소에서 2년간 근무하면서 동기로부터 알게 된 재즈의 세계..
동기는 재즈광이었는데, 한번은 테이프 몇 개를 빌려 주었고, 그 중 한 뮤지션이 바로 척 맨지오니였다.
테잎은 영화 '산체스의 아이들' O.S.T. 와 'Feels so good' 이었다. 




군 동기 덕분에 척 맨지오니를 통해 당시 재즈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지금은 빌 에반스의 팬이 되었다.
군시절 처음으로 구입했던 재즈 음반은 바로 빌 에반스의 'Portrait in Jazz' 였다. 
컴필레이션처럼 보이는 앨범 타이틀이긴 하지만, 이 음반은 컴필레이션이 아니다.
빌 에반스라는 인물을 초상화처럼 투영시킨 대표적인 음반.





그리고, 이후 가장 좋아하게 된 빌 에반스의 'Waltz for Debby'
빌 에반스가 그의 조카를 위해 썼다는 이 작품은 그를 대표하는 음악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나에게 많은 영감(?)을 불러 일으켜준 작품이다.




군제대 후 다시 본 수능.. 그리고, 99학번...
예전 고등학교시절이 떠오르면서 리코더에 대한 동경이 시작되었다.
그런 마음으로 99년 10월 리코더 관련 온라인 카페를 하나 개설했고, 이후 여러 사람들과의 소중한 만남을 가졌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면서 정신없는 상황 속에 카페를 운영하기는 어려웠고, 다른 분께 카페를 양도했다.

하지만, 리코더에 대한 열망은 쉽사리 식지 않았다.
전공을 포기하고, 지금의 직장으로 옮긴 것이 바로 2003년 여름.
이후 리코더와 바로크 시대 음악으로의 몰입은 블랙홀에 빠진 한 개체와도 같았다.
바로크와 그 이전 시대의 음악은 무척이나 자연회귀적이다.
거트현(양의 창자를 꼬아 만든 현)을 갖고 있는 현악기들, 그리고 오늘날처럼 금속키가 거의 없었던 
리코더를 비롯한 당시의 관악기들... 이들에 의한 음악은 무척이나 신선했고, 피부로 느껴지는 그 질감 속에서
마음이 정갈해지는 느낌을 맛보기도 했다.

그때 음반으로 만났던 리코더 연주가가 바로 프란스 브뤼헨(Frans Brüggen)이다. 
이 인물 덕택에 지금은 여러 곳에서 브뤼헨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다.




리코더가 부흥기를 맛보면서 백지상태와도 같은 20세기 중후반에 하나하나 건물의 골격을 세우듯이
리코더 음악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브뤼헨의 노고는 지금의 연주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의 노력의 결정체는 바로 네덜란드 레이블인 텔덱(Teldec)에서 발매된 12장의 에디션!




내가 고등학교때까지만 해도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그의 이 음반들은 안타깝게도 지금은 절판된 상태다.
그래서 뒤늦게 여기저기 수소문 하면서 음반을 구하고는 있지만, 상황이 쉽지만은 않다.
구할 수 있다해도 절판의 특수 탓에 엄청나게 뛰어버린 가격에 구비하기는 어려웠다.
그나마 밀림(아마존)을 통해 두 어장 구입하면서 지금은 6장 정도 보유하고 있다.
그야말로 리코더 음악을 시대별, 장르면, 나라별로 정리한 그의 에디션은 리코더 애호가라면 누가나 탐낼 만한 음반이다.
아마도 요즘의 상황을 봐서 브뤼헨의 에디션도 박스물로 다시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가져본다.

한 때는 이런 생각도 해봤다.
지금 이 순간에도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음악을 듣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이것이야말로 엄청난 사치가 아닌가 하고..
소중하게 보관해온 CD장을 보면서도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스스로에게 되묻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이 음악은 일상 속에서 제외시키기 어려운 존재가 되고 말았다.
하루 세 끼 밥을 먹듯이 출퇴근길 이 음악은 필수적이다.
대중적인 음악을 들을 때는 AKG K450을, 고음악을 들을 때는 PX-200II 를 미리 준비하고 집을 나선다.

지금 듣고 있는 음악은 바흐의 칸타타..
톤 코프만과 암스테르담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연주다.
어제부터 시달린 감기몸살에 음악을 듣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힘들었는데,
바흐의 칸타타만은 육체의 고통도 치유하는 힘을 갖고 있는 것만 같다.



 
결국 나를 비롯한 수 많은 애호가들이 음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음악을 통해 삶 속에서 위로를 받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늘 누군가로부터 위로 받기를 원하는데,
음악 애호가들에게 있어서는 그 대상이 음악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저는 건강한 리뷰문화를 만들기 위한 그린리뷰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