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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코더 이야기 - 4. 리코더 주요작품 [flute & 02/03 월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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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코더 이야기 - 4. 리코더 주요작품 [flute & 02/03 월호]

브뤼헨 (황금빛모서리) 2012. 3. 10. 12:18


리코더 이야기 - 4. 리코더 주요작품

 

리코더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만큼 작품 수 또한 상당히 많다. 이 작품들은 각 시대별로 악기의 쓰임새에 따라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바로크 이전 시대인 중세, 르네상스 시대에는 독주악기 보다는 성악의 보조수단으로 활용되거나 콘소트 음악(Consort)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악기 자체의 개성을 살린 작품들은 많지 않다. 반면 바로크시대에는 독주악기로 급부상하면서 당대의 소나타, 협주곡, 모음곡, 칸타타,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에 활용되었다. 이번 호에서는 바로크시대를 중심으로 그 이전과 이후의 작품들을 간략히 살펴볼까 한다.

 

중세, 르네상스 시대

중세시대에 리코더는 독주 작품의 성격이 아닌 다른 악기들과 함께 합주형태로 쓰이곤 했다. 주로 춤곡이나 성악의 반주로 많이 사용되었는데, 당시의 트루바두르, 트루베르 같은 음유시인들에 의해 연주되기도 했다. 또한, 400곡 이상 현존하는 중세시대의 대표작이기도 한 성모마리아를 찬미하는 ‘성모 마리아의 노래들(Cantigas de Santa Maria)'에서도 리코더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리코더는 여러 형태의 음악 속에서 부수적인 악기로 등장했다. 

 

Frontispiece from Ganassi, La Fontegara, 1535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서는 영국을 중심으로 콘소트(Consort) 음악이 크게 인기를 끌었다. 오늘날의 표현으로 앙상블(Ensemble)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음악은 같은 족의 악기들로 구성되었을 경우 훌 콘소트(Whole Consort), 다른 족의 악기들과 섞여 있을 경우에는 브로큰 콘소트(Broken Consort)라고 불리는데, 리코더는 전자에 해당한다. 최저 음역부터 최고음역까지 9파트 정도가 되었던 리코더는 비올족의 악기들과 더불어 당시 콘소트 음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대표적인 악기였다. 로즈(William Lawes, 1602–1645), 홀본(Anthony Holborne, c.1545-1602), 버드(William Byrd, 1540-1623)의 작품들이 대표적이고, 이 또한 비올족의 악기들과 공유했던 레퍼토리였다.

후기 르네상스, 혹은 초기 바로크라고 불릴 만한 과도기의 시기에는 양측의 성향을 모두 담고 있는 음악들이 존재했다. 이 때 리코더는 물리적으로도 과도기에 있었다. 관의 내경이 원통형에 가까웠던 중세, 르네상스 시대에서 원추형으로 변해가는 시기의 형태였다. 이때부터 리코더는 독주악기로 서서히 사용되었는데, 당시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카스텔로 (Dario Castello, c.1590–c.1658)와 폰타나(Giovanni Battista Fontana, c.1571–c.1630) 등 이탈리아 작곡가들의 곡들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이들의 소나타는 바이올린을 위한 단악장 소나타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곡들은 리코더로도 연주되곤 했다. 화려하고 다이내믹이 부각된 패시지와 비르투오즘으로 무장한 곡들은 악기의 실제적인 변화에 따른 증거물이기도 하다.

더불어 네덜란드의 야콥 판 에이크 (Jonkheer Jacob van Eyck, 1590-1657)도 주목해봐야 한다. 판 에이크는 태어날 때부터 앞이 보이지 않는 장애가 있었지만,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던 음악가였다. 그는 당시 카리용(Carillon) 조율사이자 연주가, 탁월한 리코더 연주가였다. 특히 그가 오늘날에도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그의 대표작인 <플루트의 기쁨의 정원(Der Fluyten Lust-hof)> 때문일 것이다. 총 150여곡에 달하는 작품집에는 판 에이크 본인이 직접 쓴 곡들과 다울랜드, 로즈 등의 곡들의 선율을 테마로 전개시킨 변주곡들이 실려 있다. 물론, 곡의 제목에 표시된 플루트는 리코더를 지칭한다. 곡의 규모도 상당한 만큼 여러 연주자들에 의해 꾸준하게 연주되곤 하지만, 전곡 연주로는 스웨덴의 리코더 연주가인 단 라우린의 녹음(BIS)이 유일하다.

야콥 판 에이크의 플루트의 기쁨의 정원 출판 표지 (Der Fluyten Lust-hof)

   


바로크 시대


게오르그 필립 텔레만(Georg Philipp Telemann, 1681–1767)


바로크시대, 엄밀히 말해서 후기 바로크시대에 있어서 우리는 게오르그 필립 텔레만(Georg Philipp Telemann, 1681–1767) 이라는 대작곡가를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이다. 거의 모든 장르에 있어서 상당히 많은 작품을 남긴 텔레만은 다작 작곡가로도 유명한데, 그의 리코더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 자신이 뛰어난 리코더 연주자이기도 했던 만큼 그는 독주 소나타, 트리오 소나타, 콰르텟, 협주곡, 칸타타 등에 리코더를 등장시켰다. 그의 독주와 트리오 등이 수록된 <Essercizii musici>와 <Der getreue Musikmeister>에는 리코더를 위한 작품들이 다수 담겨 있다. 특히 여기에 수록된 텔레만의 리코더를 위한 독주 소나타는 바로크시대의 리코더 소나타 중에서도 손꼽히는 작품이다. 당시 이탈리아와 프랑스로 양분화 되어있던 음악적 흐름 속에서 이들의 음악적 양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한 단계 발전시킨 업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반면 동시대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는 리코더를 위한 작품들을 많이 남기지는 않았다. 6곡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2번과 4번, 그리고 20여곡의 칸타타에 포함되어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당대의 플루트인 트라베르소 플루트를 위해 쓰인 작품들을 D조의 보이스 플루트로도 연주가 가능했었고, 당시에나 오늘날 트라베르소의 레퍼토리를 공유하는 것이 일반적이기도 한 만큼 바흐의 리코더를 위한 작품의 범위는 더 넓어질 수도 있겠다.

헨델(George Frideric Handel, 1685–1759)은 총 여섯 곡의 리코더를 위한 소나타를 작곡했는데, 이는 그의 작품 Op.1에 수록되어 있다. 헨델이 영국으로 귀화하기 전 이탈리아에서 활동할 당시 받은 음악적 영향력은 이 작품에도 영향을 미쳤고, 헨델 특유의 드라마틱한 감성과 유머러스함이 작품에 부가적으로 드러난다. 헨델은 이외에도 ‘리날도’를 비롯하여 그의 오페라 일부에도 리코더를 포함시키기도 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비발디와 삼마르티니, 스카를라티, 마르첼로 등의 작곡가들이 리코더를 위한 작품을 다수 남겼다. 그 중에서도 비발디(Antonio Lucio Vivaldi, 1678–1741)의 리코더 협주곡은 바로크시대의 리코더 협주곡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주로 알토 리코더와 소프라니노 리코더를 위한 작품들을 남겼는데, 이 작품들에는 비발디 특유의 화려한 색체감과 역동성이 강하게 느껴진다. 기술적으로도 상당한 테크닉이 필요한 만큼 연주자들의 기량을 요구한다.

바로크시대의 프랑스 리코더 음악은 오테테르(Jacques-Martin Hotteterre, 1674–1763), 뒤파르(Charles Dieupart, 1667–1740), 블라베(Michel Blavet, 1700–1768) 등의 모음곡(Suite)과 소나타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작품은 주로 트라베르소 플루트를 위해 쓰였지만, 앞서 언급한 경우와 마찬가지로 D조의 보이스 플루트로도 동시에 연주되곤 했다. 프랑스 음악 특유의 형식미와 장식음들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고전시대, 그리고 리코더의 부흥 이후


이 시대는 리코더의 암흑기가 코앞에 다가온 시기다. 화려한 음색과 큰 음량을 요구하는 시대적인 상황에 걸맞지 않은 리코더는 서서히 도태되었고, 역사 속에서 약 200년 동안 사라진다. 당시 마지막으로 리코더가 포함된 작품을 글룩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1762년 초연)>라고 보고 있지만, 차칸(Csakan, 지팡이 형태의 세로피리)도 리코더의 범주 안에 포함시킨다면 리코더의 생명은 좀 더 연장될 수 있을 것 같다. 당시 헝가리 태생의 안톤 헤베를레 (Anton Heberle, 1780-1806 or 1816)는 이 악기를 위한 소나타와 협주곡 등을 다수 남겼는데, 이 작품들은 오늘날 소프라노 리코더로도 연주되곤 한다.

차칸(Csakan, 출처: www.bjflute.at)


이후 리코더의 암흑기는 시작되었고, 20세기에 들어서서 아놀드 돌메치 등을 비롯한 고음악 부흥운동의 선구자들의 노력으로 리코더 또한 다시금 역사 속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이때부터 원전연주, 혹은 시대악기 연주가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그렇다고 리코더 음악이 과거에만 머물렀던 것은 아니었다. 고든 제이콥(Gordon Jacob, 1895-1984), 윌리엄 올윈(William Alwyn, 1905-1985), 그리고 동양의 음악가들로는 우리나라에 윤이상(Isang Yun, 1917-1995)과 일본에 히로세(Hirose, Ryohei, 1930-2008)의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글/ 박광준 (www.recordermusic.net)
[flute & ] 2012-02/03월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