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order & Lif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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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같.음

소.음.같.음. 1. 내 생애 첫 리코더 연주자, 미칼라 페트리

브뤼헨 (황금빛모서리) 2015. 1. 19. 14:34

 

 

 

 

초등학교, 당시에는 국민학교 시절 리코더는 늘상 내 가방 속에 꽂혀 있었다. 쉬는 시간이면 유행하던 만화 영화 주제가를 친구들과 불었었고, 운지표조차 흔하지 않았던 시절 나름의 반음 운지를 찾아 헤매곤 했다. 아직도 기억나는건 6학년 수업시간 짝꿍과 함께 음악책에 실려 있던 '역마차'라는 곡을 불 때, 열린 창으로 불어오던 바람 때문에 보던 페이지가 접혔던 순간. 어렴풋이 떠오르는 유년시절의 리코더에 대한 추억 때문이었을까...그 때 불던 저먼식 소프라노 리코더는 여전히 우리 집에 있고, 이젠 아들래미의 장난감이 되었다.

 

고등학교 입학 후 어느 날, 쉬는 시간에 몇 명의 선배들이 우리 반으로 들어왔다. 당시에는 써클이라고도 불렀던 동아리 중에 리코더 동아리가 있었는데, 리코더 동아리 선배들이 홍보차 방문한 거다. 당시로선 나름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와 갓 음악에 눈을 뜨면서 악기 하나 해보고 싶던 차에 선배들의 방문은 가슴 뛰게 하는 순간이었다. 다른 악기에 비해 저렴한 가격의 플라스틱 리코더는 나에게 딱 맞는 악기였다. 하지만, 걸림돌이 하나 있었으니....바로 내성적인 수줍음 타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뭔가 가슴 설레는 꿈꾸는 대상이 생기면 그 정도는 아무 장애물도 아니었다. 그리고 시작된 리코더 동아리 생활, 동아리 이름은 '파랑새'였다.

 

리코더 동아리에서 활동은 시작했지만, 지금처럼 리코더 음악을 쉽사리 접하긴 어려웠다. 그러던 차에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이었을까...문득 찾아간 동네의 자그마한 레코드 가게에서 발견한 것이 리코더 연주자 미칼라 페트리와 바이올리니스트 핀커스 주커만이 함께 연주한 텔레만과 헤베를레의 협주곡이 담긴 카세트 테잎이었다. 세련된 디자인의 자켓은 아니었지만, 리코더를 들고 있는 사진만으로도 풋내기 고등학생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렇게 미칼라 페트리와의 첫 만남이 성사되었다. 덧붙이자면, 그땐 핀커스 주커만이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인줄도 몰랐다. 

 

지금이야 여러 마이너 레이블에서 수도 없는 연주자들의 리코더 음반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국내에도 상당수의 음반들이 수입되고 있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지만, 불과 20여년 전...정확히 23년전엔 미칼라 페트리와 프란스 브뤼헨 정도의 연주가들의 소량의 음반만, 그것도 찾아 헤매야 얻을 수 있었다. 미칼라 페트리의 음반들은 초기에는 필립스 레이블에서 주로 나왔지만, 이후 BMG 클래식스를 통해 음반을 내놓으면서 국내에서도 꽤 이름이 알려졌다. 카세트 테이프 시절 라이센스로도 몇 장의 음반들이 나왔고, 홍보문구에는 '리코더의 여왕' 이라는 수식어가 붙곤 했다.

 

어떤 음반이건 모든 트랙이 마음에 쏙 드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당시 내 귀를 울렸던 음악도 그 중에서 일부였는데, 그 유명한 텔레만도 아닌 안톤 헤베를레라는 낯선 음악가의 협주곡이었다. 최근에는 헤베를레의 음악도 제법 연주되고 있고, 위고 레인처럼 차칸(Csakan)으로 연주한 음반으로도 나오고 있지만, 그 때만 해도 이 곡의 음반은 페트리의 것이 유일하지 않았나 싶다. 최근 고음악의 열기가 높아지면서 정작 고음악 애호가들은 페트리에게 등을 돌리고 있기도 하지만, 살펴보면 그녀가 세운 업적 또한 만만치 않나 싶다. 아무튼 그럼, 이 연주를 한번 들어볼까?

 

안톤 헤베를레의 리코더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G장조 1악장 알레그로 모데라토를 미칼라 페트리의 리코더, 핀커스 주커만의 바이올린, 세인트 폴 챔버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들어본다. 

 

 

 

 

처음 이 연주를 들었을 때의 희열은 지금의 것과 달랐다. 굉장히 신기한 뭔가를 발견한 어린아이의 심정과도 비슷했을 감흥! 저음역부터 최고음역까지, 그것도 엄청나게 빠른 템포 속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고르게 연주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했다. 게다가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말이다. 아마도 이런 요소들 때문에 페트리의 연주를 '기계적이다', '감정이 없다' 등등의 표현으로 비방했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조금의 거친 음색도 찾아볼 수 없는 깔끔한 연주에서는 소위 고음악 연주에서 느낄 수 있는 질감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같이 리코더를 불던 친구는 이런 페트리를 보면서 혀가 세 개가 아니냐는 둥의 농담도 하곤 했다. 어찌됐건 당시 어린 나이에 느꼈던 감성은 '상쾌함'이었다. 이런 상쾌한 연주를 또 누가 대신할 수 있을까? 지금은 이 음반을 다시 CD로 갖고 있지만, 철모르던 시절 테이프로 들었던 감동만큼의 깊이는 느낄 수 없다. 왜 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