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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일상

출근길 두 가지 풍경

브뤼헨 (황금빛모서리) 2017. 4. 6. 10:07


출근할 때 7호선 내방역에서 회사까지 걸어다닌 것도 몇 년이 되었다. 

운동삼아 시작한 게 나름 습관이 되면서 익숙해졌는데,

한동안 시간에 쫓기고, 발가락 부상(?)으로 잠시 쉬었다가 얼마전부터 재개했다.


풍경 1


멀리서 보니 한 남매가 손잡고 걸어온다.

참 정겨운 모습이다.

등교길 동생을 보살피는 오빠의 손길에 애정이 듬뿍 담겨 보였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오빠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고, 

동생은 걸음을 재촉하는 오빠에게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어쩌면 부모님의 동생을 잘 돌보라는 말에 억지로 동생 손을 잡고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빠라는, 그리고 첫째라는 의무감이 아이를 억눌렀는지도 모르겠다.

순간 우리 아이에게는 어땠나 하는 생각이...

당연한 듯 첫째니까, 형아니까 당연시했던 것들이 아이에겐 불합리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풍경 1에 관한 하루 만의 정정.

오늘 아침에 만난 남매는 어제와 달랐다.

웃고 떠들고, 얼마나 사이좋게 손잡고 등교하던지...

어제의 내 편향된 시각에 대한 반성을 깊이 했던 오늘 아침이다. ^^

2017. 4. 7


풍경 2


내방역에서 출근하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회사까지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길, 자그마한 산을 넘어가는 길이 있고,

다른 하나는 큰 대로변으로 직각으로 걷는 길이 있다.

선택은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다르다. 아무래도 대각선 길이 1~2분 정도 더 적게 걸린다.

오늘은 시간적 여유도 있고, 밤새 비가 온 탓에 미세먼지도 적어진 듯 해서 대로변 길을 선택했다.


이 길로 갈 때는 종종 만나는 모녀가 있다.

몇 년간 지나면서 자주 봤고, 인상적인 모녀였기에 기억하고 있다.

짧지 않은 등교길을 엄마와 딸은 늘 팔짱을 끼고, 뭐가 그리 즐거운지 늘 웃음이 넘쳐나던 모녀였다.

전혀 모르는 이들임에도 지나치다 만나면 흐뭇함을 느끼곤 했다.


그런데, 오늘 만난 딸의 표정엔 웃음기가 사라졌다.

늘상 팔짱 끼던 엄마도 옆에 없었다.

추측하기론... 이제 딸도 중학생이 되어 혼자 등교길을 가는게 아닌가 싶었다. 

엄마 없이 혼자 걷는 아이의 무표정한 모습에 왜그리 짠하던지...


그 순간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엔 브람스의 교향곡 4번의 1악장이 흘러 나왔다.

감정이 더 증폭되는 느낌.

마치 드라마나 영화의 배경음악이 그 상황을 더 고조시키듯이 말이다.


순간이다.

아이들의 어린시절은 정말 짧디 짧은 순간이다.

그 시절이 부모에겐 힘겹고 어려운 순간들이겠지만,

아이들이 자라고, 독립하면서 부모 곁을 떠날 때

분명 부모들은 그 시간들을 그리워하며 돌이키고 싶을 것이다.


어차피 모두가 겪어야 할 시간이라면 아이들과 좀 더 친밀한 감정을 나누고 가슴 속에 새기고 싶다.


PS. 아래는 오늘 들었던 브람스 교향곡 4번. 좋아하는 토마스 헹엘브록과 북독일 방송교향악단의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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